그림이란 인간의 정신세계를 맑게 해줄 수 있는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한다. 많은 화가들이 사람들의 정서를 맑게 해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노력해왔으나 인간의 심성을 맑게 해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이경혜 화가의 예술세계는 편안하면서 담백하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사진은 “빈 자리에 놓인 꽃” 65.2 X 50cm 2009년 ⓒ대한뉴스
화백만의 심도 깊은 회화언어로 작품 표현
이경혜 화백의 작품활동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두가지의 축을 지니고 있다. 그에게 있어 변하는 것이란 부단히 실험하고 탐구하는 자세에서 오는 것이며 변하지 않는 것이란 끝없이 자기 갱신 속에서도 일관되게 추구하는 하나의 궤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여타의 작품과 어떤 점이 다른가. 내가 그의 그림을 보고 느끼는 첫 감상은 심성에서 우러나와 화폭으로 옮겨진 깊은 내면과 따뜻한 마음, 그들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삶의 긍정과 감사에서 오는 생명과 빛이 잔잔히 그리고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그 작품을 들여다보면 색 하나하나, 이미지 하나하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작가의 흔적과 함께 그 치열한 예술혼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화사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그림들이지만 사실 밑 작업이 많아 탄생하기까지의 그 과정은 정말 힘이 듭니다. 꽃, 풍경은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보고 나서 느끼고, 그 느낌을 다시 대상에 투영해 표현해 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작업 시간도 길고 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만큼 완성해 내고 나서의 보람이나 성취감이 크기 때문에 이경혜 화백은 결코 그림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덧붙인다.
이경혜 화백의 그림을 보면 많은 동료화가들의 그의 뛰어난 색채감각에 찬사를 보낸다. 다른 어떠한 회화적인 군더더기 없이 화가는 화면을 압도하는 색채언어로서만 화폭을 채워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색채를 쓰지 않으면서도 화가만의 특질적인 조형언어와 색채언어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심도 깊은 회화언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그의 작품 속에는 작가의 정신성이 깃들어져 명상과 사유의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의 작품의 색채는 맑고 밝다. 그의 작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각적인 즐거움과 함께 삶의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되새기도록 만든다. 어쩌면 이러한 색채 이미지는 그 자신의 삶의 태도와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그에게 자연은 하나의 일상과 다름없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어울림의 미학
그의 작품은 회화가 도달할 수 있는 궁극에서 실현되는 극대화된 미감의 산물이다. 그런데 그 극대화된 미감은 동양적인 정신 및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부터 비롯되는 서구의 사실주의 미학과 연관성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형식 및 정서 그리고 정신적인 가치는 동양적인 미학과 깊은 연대감을 가지고 있다. 작품 속에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어울림의 미학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림의 내적 가치로서의 정신적인 격조 및 정서는 동양의 여백미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비어 있되 생명감으로 충만한 공간, 아무것도 눈에 띠지 않으나 정신적인 격조가 감지되는 공간, 비어 두되 고요와 순수를 느끼게 하는 공간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것이다. 비어 둔다는 것은 의식적인 공간이다. 무엇인가를 의도하는 것이다. 의미를 내포하는 비표현적인 공간이야말로 참다운 여백이다.
이경혜 화백의 그림은 서구의 사실주의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다시점 및 중심의 해체와 유사한 독특한 구조의 화면공간을 연출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재현에 기반을 두면서도 단순함과 순수형식을 추구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구상적 요소가 있으나 사실과 서사보다는 음악성이나 장식성 같은 추상적인 패턴이 두드러진다. 또한 전통적인 원근법을 무시하고 대상을 정면에서 주시하면서 자신의 느낌을 강조하고 있고 정물적 소품들을 장식적 모티브로 자주 등장시켰다. 수직적인 형태의 병과 수평적인 구도의 탁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안정감과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경혜 화백의 작품은 정물화라기보다는 마음으로 그려낸 풍경화이기도 하다. 순수한 마음으로 기물을 바라보며 마음에 존재하는 진리를 회화작품으로 표현한다. 자연에서 발견된 기물이 화백의 마음에서 형성된 새로운 표상이다. 크고 작은 자연물들과 인공적 사물이 서로 대립하거나 조화를 이루면서 이상적 삶과 단아한 심성을 찾아가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림으로 부르는 노래
이경혜 화백은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990년까지, 고등학교와 대학의 교단에서 수십년간 음악을 가르쳐왔던 음악교사이자 작곡가였다. 그의 작품 속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경험이 작품에 묻어있어 작품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음악은 형상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미술의 표현에 있어서 음악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경혜 화백은 ‘음악’을 표현하는데 있어 건반, 음자리표, 바이올린 등을 소재로 하여 그 이미지를 표현한다. 여기서 음악적 요소를 완전히 노출시키기 보다는 사실적 형태에 음악적인 형태를 어울리게 한다. 그래서인지 음악적인 배경이 자유분방한 표현이 아닌 일정한 음악적 규칙적 짜임새가 있다.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활을 오브제로서 드러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출된 주변 이미지와 숨겨진 악기의 이미지 사이에서 나타나는 절제되면서도 편안한 느낌과 함께 상상적인 음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과 같이 사물에 재현하는 구체적인 형상성을 표현하는 작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추구하는 노력이 담겨 있는 것이다.
앞으로 더 작품에 전념해 더 성숙한,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이경혜 화백. 그의 작품은 차가운 느낌보다는 동화 같이 따뜻한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화백의 개성적 표현은 순수함과 선함의 표상으로 구현되기도 했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힘들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여러 차례 봐도 질리지 않고 보면 볼수록 작품의 가치를 더해가고 있는 이경혜 화백의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하고 싶다.
취재/남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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